제4차 산업혁명과 아날로그적 감성, 시 읽고 쓰기 2 -윤일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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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과 아날로그적 감성, 시 읽고 쓰기 2 -윤일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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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생존을 위한 덕목

카이스트 원광연 석좌교수는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각종 페스티벌, 행사, 학회, 모임 등 모든 영역에서 접두어처럼 쓰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세계관은 실제와 가상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세계관이다”라고 말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6년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에 기반 하여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 융합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게 실체 없는 담론이라고 비판한다. 이 말을 처음 유통시킨 다보스 포럼을 중심으로 한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하고는 4차 산업혁명이란 말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유웅환 교수는『사람을 위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다』에서 “분명한 것은 이러한 희망과 냉소, 낙관과 비관, 기회와 소외라는, 마치 적녹색처럼 서로 상반된 신호등이 점멸하고 있음에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열차는 혁신기술을 장착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맞이할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라고 말한다.『노동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의 모든 교육방식은 1차 산업혁명이 있었던 19세기의 방식과 똑 같다”라고 말하며 “노동자가 거의 없는 세계로 향하고 있고 인간은 더욱 창의적인 일을 위해 진보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독일 뮌헨공대 마인처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산업이 변하면서 전문분야도 바뀌게 될 것이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사라지는 직업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도래할 20:80 사회(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지는 사회)에서는 기존의 주요 교과목에 수록되어 있는 지식의 암기,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도래할 20:80 사회(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지는 사회)에서는 기존의 주요 교과목에 수록되어 있는 지식의 암기,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도구적 기술의 습득 등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유웅환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소통과 상생’임을 강조한다. 그는 정말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말하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인간다움에 대한 사색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모든 기술, 산업의 발견과 성장은 사람 중심의 문화 속에서 구현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슬란드 축구팀이 시사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는 생계를 위한 일에 종사하면서도 운동선수, 영화감독, 작가, 화가,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등의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시인, 소설가로 인정받는 등단제도 같은 것은 의미를 상실하거나 그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좋은 작품을 생산하면 그냥 출판해서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 그것으로 시인, 소설가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소그룹, 지역사회, 마을 단위의 다품종 소량 생산 출판이 보다 활발해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구글이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협업’이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똑똑해도 팀워크가 없으면 구글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2016년 다보스포럼도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능력 중 하나로 ‘협업’을 꼽았다. 우리 모두는 오로지 내 자식, 내 가족만 잘 되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소통, 상생, 협업’ 같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제도와 교과과정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 앞으로는 창의력, 상상력, 협동심, 사회성, 인문적 교양, 배려, 감성, 직관력, 통찰력, 공감, 연민 등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직업에 종사할 것이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새삼 주목해야 할 점은 앞서 언급한 자질들 대부분이 아날로그 시대의 전인교육이 강조하던 덕목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는 개인이 어떤 경우와 환경에 처하든지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으로 문화적, 문학적, 예술적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보다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을 향유할 것이다.

아날로그적 감성과 소통, 적용 사례

*어머니와 소풍

경주화랑교육원에서 학부모 200여명이 ‘좋은 부모 되기, 자녀 바르게 키우기’ 연수를 받고 있었다. 오후 7시, 그날의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다. 종일 계속된 강의로 모두가 다소 지쳐 있었고 강의를 시작할 때, 그들은 무엇을 기대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저녁은 많이 드셨습니까? 종일 교육 받아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힘든지 아시겠지요.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자기 집이 부자라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느닷없이 던진 생뚱맞은 질문에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고 주변 눈치만 살폈다. 하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요. 손을 들면 옆에 아는 사람이 너 그렇게 부자 아니잖아 할까 두렵고, 안 들려고 하니 없어 보이고 참 난감 하지요. 이런 경우에는 그냥 가볍게 웃으며 표정 관리하시고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처신일 수 있습니다. 200여 분 가운데 몇 분 은 손을 들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군요. 모두가 가난하시네요.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답 하셔야 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밥을 먹고 난 후 다음 보기 중 어느 질문을 주로 하시는가요. 1번, 배부르게 먹었나? 또는 실컷 먹었나? 2번, 맛있게 먹었나? 엄마가 만든 음식 맛있더냐? 3번, (차려진 음식들이)보기 좋았나? 엄마가 차려 놓은 밥상 폼 나나? 왁자지껄한 소란과 함께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는 자신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에 손들어 보세요. 1번과 2번에 손을 드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3번은 몇 명만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손을 들지 않은 분도 속으로는 몇 번이라 결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1번은 음식의 맛이나 질, 상차림의 모양새 보다는 양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전형적인 빈곤층입니다. 일단 배불리 먹는 것이 가장 핵심 관심사이니까요. 모두가 와 하고 웃었다. 2번을 선택하신 분은 양보다는 맛, 다시 말해 음식의 질에 중점을 두니까 배고픈 것만 해결하면 된다는 단계는 지난 중산층입니다.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3번을 선택하신 분은 평소 맛있는 음식을 적당량 먹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인 상차림의 모양새나 식탁의 장식, 분위기 등을 중시하는 부유층입니다. 모두가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저 분류법에 따르면 제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부유층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소 의아해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이 어느 정도 부자였는지 궁금하시지요. 저는 9남매 막내였고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 도포자락 휘날리며 종친회 같은 데나 열심히 다니시는 경제력 없는 무골호인이었습니다. 자녀 양육의 책임은 어머니께서 짊어지셨지요. 우리 집이 얼마나 부자였는지를 보여주는 저의 졸시 한 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어린 시절 우리 동네는 시에 나오는 내용처럼 대부분이 가난했습니다. PPT 포인트를 눌러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진작에 귀띔이나 하였으면
뒷집 청송댁에서
쌀 한 되는 꿨을 텐데……

닭들만 퍼덕이는 이른 새벽
죽 끓이다 홀로 마당에 서서
소풍 간다는 말 차마 못해
전날 밤 자기 전에서야 말을 꺼낸
어린 나의 조숙함을 안쓰러워하며
흐르는 눈물 훔치며 하늘을 볼 때
쌀알 같이 촘촘한 새벽 별들은
메말라 평지가 된 당신의 젖가슴에
총알처럼 비수처럼 내려와 박히고
당신은 서럽게 서럽게 우셨습니다. 


끓는 죽에서 쌀알 건져
숯불에 졸여 밥처럼 만들어
백철 도시락에 꼭꼭 눌러 담고
고구마 두 개, 감 세 개
밤늦게 마련한 말표 사이다 한 병
보자기에 싸는 당신의 눈에선
피보다 진한 눈물 한없이 흘러내려
앞마당에 붉게 핀 맨드라미
더욱 검붉게 물들였습니다

삽짝문 나서는 철부지에게
십 원짜리 하나 꼭 쥐어주며
잘 놀다 오너라 나직이 당부할 때
툇마루 밑 복실이도 쪼르르 뛰어나와
어머니 치마 물고 꼬리치며 까불대고
붉게 물든 앞산이 치맛자락 날리며
너울너울 춤추며 우리 집으로 내려와서
나의 손을 꼬옥 잡고 어서 데려 갔습니다. 


강굽이 내려다보이는 검단동 산마루
보물찾기 노래자랑 정신없이 놀다가
소풍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야바위꾼
빙빙 도는 나무원판 위 닭털달린 작은 화살로
일 원 주고 꽂아보고 일 원 주고 또 꽂아보고
한 푼도 남김없이 십 원 다 날려도
그 날은 그렇게도 즐거웠습니다.

저물도록 놀다가 돌아오는 방천길
저 멀리 뚝다리 위에서 나를 기다리며
노을에 젖어있던 당신의 모습
강물과 함께 세월은 흘러가도
당신의 모습 당신의 눈물
내 가슴 속 언제까지 남아 있을 겁니다
            -졸시「어머니와 소풍」전문

강당이 갑자기 침묵에 잠겼다. 나도 20초 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한참 후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 사람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성장한 환경이 이런데도 내가 우리 집이 부자였다고 말한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우리에게 밥이나 다른 먹을 것을 줄 때, 그 어떤 음식도 그냥 주지 않았습니다. 냉수를 줄 때도 쟁반에 받쳐서 주었습니다. 학교 다녀와서 배고프다 하면 간혹 프라이팬에 밥을 볶아 주시곤 했는데, 어머니께서는 밥을 다 볶으면 프라이팬 한가운데로 밥을 모아 동그란 그릇에 퍼 담고는, 사기 접시 위에 그릇을 거꾸로 하여 그릇만 살며시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면 음식점에서 주는 볶음밥처럼 접시에 밥이 소복이 돋아나 보기 좋은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낙네들이 밥을 담을 때, 식구들의 밥을 먼저 담고 자기 밥은 밥주걱으로 비뚜름하게 그릇에 긁어 담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집안 행사에서 며느리나 질부들이 그런 식으로 밥을 담아 오면 어머니께서 아주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왜 밥을 그 모양으로 담느냐, 손에 물 묻혀 가에 있는 밥 가운데로 모아 제대로 모양을 내서 가져오너라. 어머니께서는 여자도 자기 밥을 반듯하게 담아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모양새와 맵시, 식탁의 청결을 중시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넓은 마당에서 피는 제철 꽃을 병에 꽂아 큰방 경대 위나 아이들 책상 위에 얹어두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부자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이 밥 달라고 할 때 밥을 볶은 후 프라이팬 채로 주며 다 먹고 난 뒤 싱크대에 넣고 물 부어 놓으라고 하지 마십시오. 예쁘게 모양을 내서 접시에 담아 주세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의 세 가지 질문은 미국의 교육자 루비 페인이 쓴 『계층이동의 사다리』에 나옵니다. 그녀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원은 여러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재정적 자원(물건과 서비스를 사는 데 필요한 돈), 정서적 자원(정서적 반응을 선택하고 통제하는 힘, 특히 부정적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지지 않는 것, 이것은 내적 자원으로서, 끈기와 인내력으로 발현되고 각자의 선택으로 드러난다), 지적자원(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적 능력과 기술, 읽기, 쓰기, 계산하기 등이 포함), 영적 자원(신을 믿는 것), 신체적 자원(신체의 건강과 활동력), 지원 시스템(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대체 자원, 친구와 가족 등을 의미, 외적 자원에 해당), 관계 ‧ 역할 모델(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지지 않는 어른과 자주 만날 수 있는가), 불문율 지식(집단의 암묵적 신호와 관습을 이해하는가) 등이 그녀가 제시하는 다양한 종류의 자원입니다. 

 오늘날은 돈이 있고 없고, 다시 말해 ‘재정적 자원’으로만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합니다. 루비 페인은 위에 언급된 모든 항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를 가난이라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재정적 자원’인 돈은 없어도 ‘정서적 자원’은 매우 풍부했지요. 또한 ‘지원 시스템’이나 ‘관계 ‧ 역할 모델’ 측면에서도 비교적 부유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 집안에는 조부모 중 한 분은 계셨지요. 온 동네 사람들이 자기 집 아이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못된 언행은 지적하며 고쳐주었고, 잘하는 행동은 마을 사람 모두가 칭찬해주었습니다. 또래 친구나 형, 누나도 언제나 상담자 역할을 해 주었지요. 배고프고 가난했지만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주변 환경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었고, 가난 속에서도 배려, 연민, 상부상조, 효, 의리, 우애 등의 덕목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에 가난을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돈은 없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부자였다는 말이지요.
강의를 마치자 여러 명이 다가와서 정말 오늘 깨친 것이 많다고 했다. ‘어머니와 소풍’이 슬프지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영감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시 한 편이 부모 자녀 간의 관계, 자녀 교육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고 했다. 대구대학교에서 경상북도 진로담당교사 300여명 연수에서도 이 이야기를 했는데 강의를 마치자 여교사 한 명이 다가와서 깔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초중고에 다니는 사내애만 셋인데 우리 집은 극빈층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그 이후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부모 자식 간의 바람직한 관계 등을 말할 때 ‘어머니와 소풍’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전개하곤 한다. 지금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아주 다른 환경에서 나온 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깊이 공감하며 일부는 강의가 끝난 뒤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한다.

*장마철 


학부모역량교육을 할 때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고, 이기적이고, 즉흥적이고, 무엇을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고 부모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부모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돌이켜보고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시간적인 여유를 주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대인의 시간관념은 극단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 생활은 분과 초를 다투며 바쁘게 돌아갑니다. 누군가와 약속하여 기다릴 때, 상대방이 정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기다리는 사람은 일종의 심리적 고문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깨어있는 시간동안 우리는 일이나 오락 등 무엇인가에 몰두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현대인의 민감한 시간관념은 톱니바퀴의 회전과 디지털 계기판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시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과 달, 별이 만들어 내는 자연적인 우주의 시간을 일상생활에서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산업사회 이전 단계에 사는 사람들은 계절의 순환, 일출, 일몰 등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도시인들은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은 보지 않고, 톱니바퀴나 디지털 숫자판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시간에 의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제 도시인들은 교외로 나가지 않으면 계절의 변화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 때 꿈과 동경의 대상이던 별을 이제 도시 아이들은 잘 볼 수가 없습니다. 큰 건물들 사이사이에서 반짝이는 대형 네온사인이 밤하늘의 별을 대신하고, 사람들은 인공적인 불빛을 보며 밤길을 찾아갑니다.
  도시 생활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은 무엇이며, 잃어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교내 폭력 문제도 이런 도시 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빌딩의 숲에 가려 황혼녘의 불타는 노을을 볼 수 없는 아이들, 별을 보며 대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맛보지 못하는 아이들, 모든 즐거움을 돈으로만 얻으려고 하는 아이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주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자연을 느끼고 사랑하는 아이들은 난폭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청소년들, 특히 도시 학생들의 정서 불안과 폭력성은 학교 건물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논문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예전의 교사(校舍)는 대개가 목조였고 지붕도 양철이 많았습니다. 이런 건물에서는 바람소리, 벌레 소리, 비오는 소리가 그대로 교실로 들어올 수 있어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모든 자연의 소리를 차단하여 풍경을 삭막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성정을 거칠게 만듭니다. 자율학습 등으로 답답한 실내에 오래 갇혀있어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처지는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요즘은 지구 이상 기후 때문에 우리나라에 장마철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비오는 날이면 열린 듯 닫힌 문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도 보고 애수에 젖기도 했지요. 고층 콘크리트 건물에서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질문명이 주는 풍요 속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밤새 퍼부은 비로
학교 앞 샛강 넘치는 날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결석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그런 날은
누나를 졸라서
사카린 물 풀어먹인
밀이나 콩 볶아
어금니 아프도록  십으며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거나
배 깔고 엎디어 만화책을 볼 때면 

눅눅하고 답답한 여름장마도
철부지 우리에겐 즐겁기만 했고
아버지 수심에 찬 주름진 얼굴도
돌아서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
형과 나는 은밀한 눈빛으로
내일도 모레도 계속 비가 내려
우리 집만 떠내려가지 말고
샛강 물은 줄지 않기를
낄낄거리며 속삭이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간절히 쉬고 싶을 때는
샛강 넘치는 꿈을 꾼다
     -졸시「장마철」전문

우리 어린 시절, 장마철은 이러했습니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 공부하기 싫을 때 정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요. 요즈음 아이들은 일주일 내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부모가 짜 준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겐 학교 앞 샛강 넘치는 일도, 정전도 없습니다. 여유가 없으면 모든 것이 각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연 후 많은 부모님들이 찾아와 ‘샛강 넘치는 일’이나 ‘정전’에 해당되는 일을 일부러라도 만들어 아이들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어야겠다고 말한다. 

왜 시를 읽고 써야 하나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상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ㅡ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22장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고교는 아이비리그 진학률 70% 이상을 자랑하는 입시사관학교다. 1950년대의 그 학교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강요하는 “넌 하버드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어야 해, 의대를 졸업하게 되면 그 땐 네 마음대로 해.”와 같은 대사는 “명문대만 입학하면 모든 것 네 멋대로 해라.”라고 말하는 우리 부모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학교에 발을 디딘 신임 교사 존 키팅은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향해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고 가르친다. 그는 책상 위에 올라가서 “내가 왜 이 위에 섰을까? 이 위에서는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잘 알고 있는 것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보거라. 틀리거나 바보 같아도 반드시 해 보라”라고 가르친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읽고 쓴다”라고 말한다. 그는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라고 강조한다. 이 대사 역시 오늘과 내일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의사, 판검사, 교수, 교사, 공무원,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 등의 직업은 삶의 목적이 아니고,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시는 메타포(metaphor, 은유)의 문학이다. 은유는 모든 창조적 사고와 생각의 도구다. 은유가 없다면 인간의 모든 예술과 학문은 거의 불가능하다. G.레이코프와 M. 존슨은 『삶으로서의 은유』에서 “은유 없이 직접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이 하나라도 있는가?”라고 묻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적 특성이라고 말했다. 진리와 사물의 본성은 은유라는 옷을 입고 나서야 우리에게 파악된다.『생각의 시대』를 쓴 인문학자 김용규는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다”라고 설명한다. 시와 은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어쨌든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감성, 창의력, 상상력 등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시를 읽고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조만간 맞이하게 될 노동 없는 시대 또는 노동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는 시대에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재미있고, 창조적인 삶을 살길 원한다면 청소년기에, 아니 인생의 어느 시기든 상관없이, 반드시 시를 읽고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 계간 『시와 반시』 2017년 겨울호 

참고한 책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옮김,『정치학』, 도서출판 숲, 2017 외 다른 역자본 참조.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옮김, 『시학』, 문예출판사, 2015 외 다른 역자본 참조.
토드 부크홀츠, 박세연 옮김,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 21세기북스, 2017.
뤼트허르 브레흐만, 안기순 옮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김영사, 2017
유웅환, 『사람을 위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다』, 비즈니스맵, 2017.
윤일현, 시집『낙동강』, 도서출판 사람, 1994.
윤일현, 교육평론집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 학이사, 2009.
루비 페인, 김우열 옮김, 『계층이동의 사다리』, 황금사자, 2011.
김용규, 『생각의 시대』,살림, 2014.
G. 레이코프, M 존슨, 노양진, 나익주 옮김,『삶으로서의 은유』, 2016.

윤일현 : 대구출생. 계간『사람의 문학』, 『현대문학』, 『현대시』 등에 시를 발표하고 시집『낙동강』을 출간하며 등단. 시집 <꽃처럼 나비처럼>, 교육평론집 <불혹의 아이들>,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 <밥상과 책상 사이> , 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대구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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